유럽인인지 미국인인지 법의학자가 쓴 책에 나온 이야기다. 저자도 덕국 법의학자가 낸 사례 리뷰 논문에서 본 이야기라고 한다. 


덕국에서 어떤 양반이 포크레인인지 아무튼 중장비를 놓고 작업(?)을 했다고 한다. 자기가 운전대를 잡은 상태에서 자기 목이랑 포크레인(?) 손이랑 줄로 묶어서 정신줄이 간당간당해지기 직전까지 몰아놓으면 무슨 성적 쾌감이 온다나? 이거 비슷하게 자발적으로 질식자위(?)를 하다가 간 사람이 있다고 들었는데, 아무튼 이 양반도 그렇게 했단다. 너무나 마음에 들다 못해 사랑의 감정이 샘솟았는지 자기에게 쾌락을 안겨준 그 장비 한쪽 구석에다가 사랑(?)의 시까지 한 수 적어 놓았다는데, 사랑이 너무 지긋했는지 아예 정신줄을 놔버려서 그대로 질식사해버렸다. 


저자가 이 이야기를 쓰면서 "그 사람이 적어놓았다는 사랑의 시를 그 논문 저자가 한 줄도 인용하지 않음이 심히 안타깝다." 하고 적었는데 나도 안타깝다. 도대체 뭐라고 적어놓았을지 궁금한데.

      잡담  |  2013. 9. 2. 21:33




예전에 실험실에 있을 때 내가 몇 안 되는 종교인이었다.  그래서 종종 선배랑 술 마실 때 종교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나는 사도들이나 몇몇 성인들이 기적을 일으키기도 했다는 말을 믿는다.  만약 정말로 신이 존재하시고, 또한 가톨릭이 그분이 친히 세운 유일한 종교라면  기적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은 없지 않겠나?  하지만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과 기적이 일어난다는 말은 매우 다르다. 


웹 서핑 등을 할 때 나는 툭하면 귀신 타령하는 말에 화를 내는 경우가 잦다.  일단 정신과에 보내야 마땅할 사람에게 정신과를 안 보내고 무슨 도사님, 법사님 타령부터 하기 때문이다.  설령 천주교 신부님에게 보낸다고 해도 화를 냈을 거다. 먼저 정신과 의사에게 보이고, 믿고, 차분히 따라주어야 하는데 다짜고짜 종교적인 것을 권해서는 절대 안 된다. 


제일 짜증나는 부류는 '의학적인 진료를 전혀 무시하지는 않는' 척하면서도 실제로는 무시하는 쪽이다. 무게중심을 겁나 종교적인 데에 둔다. 정신과 치료는 특히나 환자가 의사를 믿고 따라야 하는데,  이런 따위 놈들 말을 들으면 환자가 의사를 제대로 신뢰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딴 말에 귀를 기울이는 환자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잡담  |  2013. 8. 16. 01:24





인터넷에서 찾은, 레스티얘르비 호수 여름철 사진


5년 전에 여동생이랑 같이 핀란드에 여행 갔을 때, 레스티얘르비(Lestijärvi)라는 호수 마을에서 며칠 머무른 적이 있다.  핀란드어로 얘르비(Järvi)라고 하면 호수란 뜻이라고 한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핀란드어에는 a와 ä로 표시되는 모음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외국인 귀에는 그냥 '아'라는 거다.  핀란드인들에게 발음이 뭐가 다르냐고 물어보면 ä는 '애'라고 말은 해주는데 핀란드인들이 실제로 말하는 중에 들어보면 그냥 '아'로 들린다.  나랑 내 동생이 핀란드어 지명을 읽을 땐 편의상 ä는 '애'라,  y는 '위'라 간주하고 장모음은 전부 단모음으로 간주했다.  한국인이 발음하기 편하게 바꿔버린 거지만,  이 정도만 해도 현지인들에게 '나 어디로 간다' 같은 이야기를 할 땐 다들 알아들었으니까.   나중에 알고 지내는 언덕에게 들으니,  핀란드어를 배우는 소수의 (한국인도, 핀란드인도 아닌) 언덕들 사이에서도 a와 ä 구분은 지랄 같기로 유명한단다. ^^;;; 

위배스퀼래(Jyväskylä), 그래,  이 지명도 한국인이 읽기 지랄 같다.  핀란드어 표기에서 J는 다른 유럽어의 로마자 표기 용례와 마찬가지로 반모음 /j/인데,  내 혓바닥 감각으로는 j와 y과 합쳐지면 뭐라고 발음해야 할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위?  유이? 고민을 포기하고 그냥 위배스퀼래라고 읽고 있다.  아무튼 1월 4일쯤에 위배스퀼래市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레스티얘르비로 갔다.  위배스퀼래 버스 터미널에서 표 사려고 줄을 서니까 창구 여직원이 우릴 보고 긴장했다는 티가 팍팍 났다.    뭐랄까... "아이씨...왜 여기까지 들어온 거야?  대화할 수 있을까?" 하는 듯한 느낌으로.   하지만 표를 끊는데 무슨 심오한 대화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해서 서로의 어설픈 영어로도 충분히 이야기가 됐다.  표 삯을 결재하느라 신분증이 필요하다기에 주민등록증을 보여주었더니 잠시 멍하니 있다가 여직원이 물어보았다.  이거 생년월일 표시가 뭐냐고.    그래서 주민등록증 앞자리 숫자를 가리켰다. ^^;;    

버스는 오전 11시 출발 예정이었다. 핀란드의 국민 초콜릿이라는 빠쪨 초콜릿이 성탄절 대목이 지났다고 떨이로 팔기에 한 통 샀다. 위배스퀼래에서 우릴 재워주었던 핀란드인 채식주의자 아저씨가 빠쪨이 참 맛이 좋다고 칭찬을 자자하게 해둔 터라 맛이 궁금하기도 했고,  몸도 당분이 그리웠고. 미리 버스에 타면서 기사에게 물었다.

"레스티얘르비?"
"예스"

의미를 풀면....


"우리 레스티얘르비 가니까 신경 좀 써 주셈..."
"알았어"

기사가 라디오 방송을 틀었다.  뚜,  뚜, 뚜, 뚜우우우우우    부릉부릉
동생이 중얼거렸다.

"11시에 칼출발이네." 


버스가 가는 동안 도로에 차가 거의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버스가 칼출발, 칼도착을 할 수 있었다. 래스티얘르비 정류장에 도착하니까 버스 기사가 우리에게 눈짓을 하더니 내려서 짐칸을 열어주었다.  나랑 동생도 따라 내려서 짐을 챙기는데,  레스티얘르비에서 우릴 재워주시기로 한 할머니가 뒤에 와서 인사를 했다.  우릴 알아보긴 아주 쉬웠다. 관광지도 아닌 곳까지 들어온 유색인종이 흔한 건 아니니까. 

 레스티얘르비는 북위 63도 30분에 있다.  태양의 위치랑 시간감각이 영 맞질 않았다.  태양의 위치를 보면 오전 8시쯤인 것 같은데 정오다.  당연히 낮은 짧다.  내가 갔을 때 낮이 하루에 5시간쯤인가 그랬으니. 

내가 핀란드에서 딱 동짓날 도착해서 3주간 돌아다녔다.  이때 겨울밤이 너무 길어서 작년에 여행갈 때는 프랑스-스웨덴에 하지 무렵에 갔는데,  하지든 동지든,  낮이 너무 길든 밤이 너무 길든 몸 생채시간이랑 안 맞으면 힘들긴 매한가지임을 깨달았다. 

우리 남매를 재워주기로 한 노부부는 점잖은 중산층 가정이었다.  할아버지는 대학을 나온 뒤 통역사로 일하셨다고 했고 할머니는 교편을 잡았던 분이었다.  나중에 나랑 내 동생이 이야기했다. 

"한국인이나 핀란드인이나 교사들은 말하는 어투가 다 똑같은가 봐." 

도착한 첫날 할아버지가 나와 내 동생을 앞에 두고 일본어로 막 뭐라고 하기 시작했다.  이 할아버지, 일본어도 하시는가 싶어서 입을 딱 벌리니까 웃으면서 하는 말이,  일본어를 배운 적은 없는데 부부끼리 일본에 여행 갔을 때 음식점에서 일본인 종업원이 하는 소리를 듣고 그거 따라한 거라고 했다.  그걸 한 번 듣고 아직까지 외우고 있단 밀이야?  하고 놀랐다.   어조와 발음까지 상당히 정확하게 따라했던 것 같다. 적어도 내 귀로는 구분이 안 될 만큼.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물었다. 
"이 겨울에 핀란드에 뭐 볼 거 있다고 왔니? 밤이랑 눈밖에 볼 게 없는데."  
"눈이랑 밤 보러 왔죠."  
할아버지가 웃었다. 아닌 게 아니라 동생이 나중에 이런 말을 했다. 
"북유럽에도 겨울에 한 번은 가봐도 좋을 것 같아. 그때가 아니면 못 보는 게 있으니까.... 한 번만."

레스티얘르비 호수는 수평선이 보일 만큼 넓은 호수였다.  할아버지가 여기 둘레가 대략 15 km쯤 된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호수 안쪽에 작은 섬이 있는데 동네 주민들이 여름에 사용하는 별장들이 보였다. 섬뿐만 아니라 호수 둘레에도 별장이나 사우나장이 있는데,  여름이면 주민들이 사우나를 하다가 호수 물에 뛰어들어서 몸을 식히고 또  사우나장에 들어가고 한다나.    

예전에 이 댁에 어느 케냐 여자가 온 적이 있다고 한다. 살면서 '큰물'이라는 걸 본 적이 없던 터라 호수를 보자 옷을 벗고는 들어가서,  수영도 아니고 그냥 얕은 물에서 꿈뜰거리면서 "나 지금 수영하고 있어요!" 라고 하더라나. ^^;;   내가 갔을 땐 한겨울이라 호수가 꽝꽝 얼어 있었기 때문에 수영은 하지 못했다. 

도착하고 다음날,  아침 8시쯤에 일어났지만 밖은 새벽 3-4시인 것처럼 깜깜했다.  할머니는 일부러 불을 켜지 않고 식탁에 촛불만 켜 놓고 같이 밥을 먹었다. 할머니 말이 당신은 촛불을 워낙 좋아해서 이렇게 종종 켜놓지만,  할아버지가 그러다 불 난다고 싫어하기 때문에 젊었을 때에는 그걸로 많이도 싸웠다고 한다. ^^;;   실제로 핀란드에 머무는 동안 초나 촛대 장식을 많이 보았다.  그리고 밤중에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종종 마을 사람들이 자기 집 문간에 작은 초를 켜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왜 불을 켜두냐고 물어보니까 핀란드 풍습인데,  겨울에 빛이 돌아오길 바라는 거라나.  가로등이 거의 없는 곳에서 집집마다 문간에 촛불을 켜둔 모습은 꽤 보기 좋았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실제로 초를  붙여 놓았음은 여기 와서 처음으로 알았다.  핀란드어로 크리스마드를 요울루라고 부르고,  여기 전통에도 산타클로스 비슷한 정령(?) 할아버지 같은 게 있다고 했다.  할머니 말로는 염소 할아버지라고 하던가 그런데, 수염을 염소처럼 길렀다고 그렇게 설명하셨던 것 같다.  할머니 말이 예전에는 집안의 노인이나 마을 어른이 크리스마스 무렵에 이 염소 할배로 분장하고 기습적으로 애들 모인 곳으로 들어가서,  "나쁜 애들이 누구냐!  벌을 주마, 벌을 받고 싶지 않으면 내가 기분 좋도록 노래를 불러라!"라는 식으로 으름장을 놓았고, 애들은 놀래서 진짜로 노래를 불렀다나. ^^;;    다만 요새는 미국식 산타클로스의 영향을 받아서 예전과 달리 빨간 옷을 입고 점점 산타클로스 비슷하게 변해간다고 했다. 


크리스마스 트리 가지에 양초를 붙여놓고 거기에 불을 붙였다.  


그 외에 집안에 도깨비(?)가 있다고 믿어서 어머니들이 음식을 조금 남겨두고, 특히 사우나실 앞에 도깨비를 위한 작은 공물을 남겨두기도 했단 이야기도 할머니로부터 들었다. 지금은 이런 나이든 분들이나 기억하는 오래된 풍습인 것 같지만. 난 그 이야기를 듣고 성주신, 조왕신,  용단지 같은 우리네 가택신앙을 연상했다. 

할머니 말씀이 당신이 어릴 때만 해도 핀란드는 꽤 살기 척박한 나라라 하였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싶다.  겨울이면 밤도 길어서 밖에서 일도 못하고 집안 벽난로 근처에서만 있었다나.  일주일에 한번 온가족이 사우나를 했는데,  어머니들은 가족들이 사우나를 하면 온 가족의 옷을 번개같이 빨아서 사우나실 안에서 말렸다고 한다.  내가 할머니에게 들은 바가 정확하다면,  이 동네 예배당 옆에 있는 비석은 이 동네에 흉년이 들었을 때 아사한 사람들 명단을 적은 거다.  내가 제대로 이해한 거라면.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동네 호수로 나갔다.  호수가 꽝꽝 얼어붙었기 때문에 호수 위를 '걸어서' 산책하고 돌아왔다.  바람이 휭휠 불어서 완전 중무장을 하고 돌아다녀야 했다. 할머니는 호수에서 강으로 물이 빠져나가는 쪽은 얼음이 얇아서 사람이 올라서면 깨질 수 있다고 주의를 주었다.  그래서 호수 위를 돌아다니다가 어디를 밟았는데 (얼음 위에 쌓인) 눈이 물에 젖는 게 보이거든 천천히 뒤로 물러서라고 알려주었다. 풍덩 빠지면 말할 것도 없지만, 설령 다리 한짝만이라도 물에 젖으면 이런 추위에서는 동상에 걸리므로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애들이 호숫가 한켠에서 아이스 하키를 하고 있었고,  어느 동네 아저씨는 호수 위에서 스키를 타고 있었다.  

레스티얘르비 호수 위에서.  이거 찍은 시간이 낮 11시 30분이다.


같은 시간,  조금 다른 방향으로. 


여동생이 호수 위에서 눈을 밟고 지나간 흔적. 


같은 시간,  호수 위 약간 다른 곳에서. 동네 아저씨가 지나간 흔적이 눈 위에 남았다.



집에 돌아오면 할머니가 하는 음식에서 버터 냄새가 물씬 났다.  할머니가 손님들이라고 더 잘 해주셨던 것 같다.  나중에 할아버지께 들으니 예전에 어느 일본인 노부부가 손님으로 온 적이 있는데,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고 일본 음식을 찾는 바람에 곤욕스러웠단다.  그에 비하면 우리 남매는 주는 대로 다 잘 먹으니 아주 좋은 손님들이라고 하였다. ^^;;  

동네를 돌아다니면 동네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앞에서 수다 떠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나랑 내 동생이 지나가면 애들이 전부 입을 다물고 뻔히 우리들을 쳐다보았다.  헬싱키에서는 유색인종이 꽤 흔해서인지 별로 이런 모습이 없었지만,  좀 외진 곳으로 나가면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기차에서는 어떤 아기가 나를 보고 손가락질하며 뭐라고 막 하니까,  아기 아빠가 아기 손가락을 꾸욱 오므리게 한 다음 기찻간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왔다.  우리들이 불쾌해할까 봐 그렇게 했을 것이다.  뭐,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였으니까 크게 불쾌하게 생각하진 않았지만.  

밤중에 할머니 부부가 동네 친구분을 만나러 가는데 우리도 따라오겠냐고 물었다.  따라갔다.  우리 남매가 입은 잠바 팔에 뭔가 반짝이는 것을 달아주었다. 이게 뭐냐고 물으니,  밤중에 도로변을 걷다가 차에 치일 수도 있기 때문에,  차 불빛을 받으면 멀리서도 반짝여서 사람 있다고 알려주는 거라고 하였다. 그렇게 동네 친구분 댁에 갔는데,  이분은 남편과 사별하고 자식들은 헬싱키에 나가 있어서 당신 혼자 사는 분이었다.  그래서 집도 아주 조그마했다. 할머니 혼자 살아야 하니까.    그 할머니는 당신 젊었을 때 사진, 결혼했을 때 사진 같은 것을 보여주었는데 전부 흑백이었다.  옷도 딱 봐도 옛날 식이고.   

이 동네 할머니가 내 머리를 만지면서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듣고 웃으면서 할머니가 번역해주시길,  "염색도 안 했는데 검은 머리가 나온다는 게 신기해"였다나. ^^;;;  나도 속으로 '염색도 안 했는데 검은 머리 아닌 머리가 나온다는 것도 신기해요'라고 중얼거렸다. 

일요일에 할머니가 루터파 예배 보러 가시는 길에 나도 예배당에 따라갔다.  할마니 말이 여기 목사님이 아이를 여덟 명인가 나았다고 하기에 내가 입을 쩍 하고 벌렸더니,  그건 핀란드인 기준으로도 흔히 않으니 그게 보통이라고 생각하진 말라고 그랬다. ^^;;  하얀 나무로 된 예배당이었는데 2층에 작은 오르간이 있었다.  오르간에 라틴어로 Deo soli gloria(하느님 홀로 영광)이라는 구절이 적혀 있었다.  물론 거기 모인 사람 중 유색인종은 나 혼자. 그래서 할마니랑 마주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물어보았는데, 할머니가 핀란드어로 설명하는 이야기 중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꼬레아" 단 한 마디밖에 없었다. ^^;;; 

나중에 호수 위에서 썰매를 탔는데,  동생의 소감이 재미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자연이 무섭다는 생각을 했어."
막 달려서 속도를 붙이면 썰매 위에 올라타서 쭈욱 미끄러지는데,  눈발은 날리고 호수에 있는 섬은 가까워지고 수평선은 저 멀리 있는 걸 보면 사람이 작다는 생각이 들면서 무섭다고 그랬다.  핀란드는 자연 자체도 아기자기하다기보다는 넓다, 거칠단 느낌이 강해서 더 그런 것 같다.

      카테고리 없음  |  2013. 8. 16.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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