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포스팅에 무나카타 3위신에 대한 일본서기 본문과 일서를 정리한 바 있다. 그런데 본문과 일서의 전승이 미묘한 부분에서 차이가 많아서,  최초의 전승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내가 이쪽으로는 지식이 없지만, 일단 일본서기 내의 기록만을 바탕으로,  내 나름대로 이야기의 원형을 생각해보았다. 


내가 정한 원칙은 이러하다. 


1. 단순한 이야기가 원형에 가깝다.

2. 신화 내 캐릭터들의 성격이 일관된 쪽이 원형에 가깝다. 

3. 아마테라스 여신을 띄워주는 이야기는 원형과 멀다. 

4. 현실역사에서 후대의 사실이 전제되어야 이해되는 부분은 원형과 멀다. 



스사노오가 다카마노하라로 올라올 때 '하카루타마'라는 신이 스사노오에게 구슬을 바쳤다는 6-2의 요소는 1번과 2번에 근거해서 무시한다. 스사노오는 자발적으로 구슬을 바치려고 할 만한 순순한 신이 아니다. 게다가 '하카루타마'라는 이름 자체가 작위적이라 1번에 어긋난다. 


스사노오와 아마테라스가 천상의 강가에서 서로 대치하였을 때, 맹세하자는 말을 아마테라스가 꺼냈다는 6-1, 6-3의 요소는 2번과 3번에 근거해서 무시한다. 아마테라스는 스사노오가 자기를 다치게 했을 때에도 동굴에 스스로 들어갈 정도로 소극적이며,  유명한 천손강림 전승에서도 아마테라스가 주도하는 전승은 후대의 것이다.  또한 스사노오는 난폭하며 할 말은 하고 사는(___) 신이므로,  주도적인 역할을 스사노오가 하는 쪽이 맞을 것이다. 


스사노오와 아마테라스가 맹세를 할 때에 서로 물건을 바꾸었다는 6-0, 6-2의 전승은 1번에 근거하여 무시한다.


아마테라스가 맹세할 때에 스사노오에게 "네가 남신을 낳는다면 그 아이가 하늘을 다스리게 하겠다."라고 말했다는 6-3의 전승은 1번과 2번에 근거하여 무시한다. 아마테라스가 자기 말고 다른 신이 하늘을 지배하게 한다는 이야기는 성격에 맞지 않으며,  또한 이야기 자체에 있어서도 불필요한 요소다. 


스사노오가 구슬을,  아마테라스가 검을 씹어서 신을 낳았다는 6-0, 6-1, 6-3의 전승은 4번 원칙을 깨고 무시한다. 무나카타 3여신이 아마테라스에게서 태어났다고 이야기하는 시점에서 이미 무나카타 씨가 야마토 조정에 포섭된 뒤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구슬이 검보다 더 '고귀한' 상징인데,  스사노오가 낳은 5위 남신보다는 아마테라스가 낳은 3위 여신을, 일본서기에서 더 많이 신경 쓴다. 그러므로 6-2 전승과 마찬가지로 아마테라스가 구슬을 씹었다는 이야기를 원형에 가깝다고 본다. 


스사노오가 낳았다는 신은 5위가 맞을 것이다. 6위라는 일본서기 6-3의 전승을 무시한다. (애당초 6-3의 전승은 전반적으로 매우 후대의 것으로 보인다.) 


아마테라스가 3위 여신을 무나타카로 보내면서 "해로 가운데에서 천손을 돕고, 천손의 제사를 받아라."라고 이야기했다는 부분은 야마토 조정이 무나카타 여신들에게 공식적으로 제사지내던 후대의 정치적 상황이 반영되었으므로, 1번과 4번에 근거해서 무시한다. 


추가: 고사기의 해당 부분에서는 흥미로운 변형이 나타나 있다. 일본서기 내 모든 전승에서는 '남신이 나오면' 스사노오가 결백하다고 서약(우케이) 전에 미리 정하고, 그에 따라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고사기에서는 그런 거 없이 먼저 서로 물건을 바꾸어 씹어서 아이들을 낳은 뒤,  (스사노오의 칼을 아마테라스가 씹어서 나온) 세 신이 연약한 여자이기 때문에 스사노오는 스스로가 결백하다고 주장하며, 아마테라스는 이를 인정한다.  하지만 박경미의 논문 '수약녀론'(일어일문학회 42권 2호)에 근거하여 고사기의 이러한 전승을 후대의 변형으로 보고 무시한다. 


그러므로 내 생각에 따른다면, 가장 원형이 된 이야기는 아래와 같을 것이다. 


스사노오가 누이를 만나러 다카마노하라에 올라오자 아마테라스가 제위를 걱정하여 남장을 하고 무장을 갖춘 채로 스사노오와 대치한다. 스사노오는 누이가 자기를 믿지 못함을 알고 서약(우케이)로 점을 쳐보자고 제안하면서, 만약 자기가 남신을 낳으면 결백하다고 전제한다. 이에 아마테라스가 자기가 지닌 구슬을 샘물에 씻어 씹어 뱉으니 여신 셋이 나왔다.  스사노오가 자기가 지닌 십악검을 조각내어 역시 샘물에 씻고 씹어서 뱉으니 남신 다섯이 나온다. 아마테라스는 스사노오가 다른 속셈이 없음을 인정하고 다카마노하라에 들어오도록 허락한다. 


그런데 내 생각이 얼마나 정확할지는 나도 모르겠다. 실제 일본신화 연구자들이 접한다면 웃을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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