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영어로 Leonine prayer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우리말로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로마 전례에서는 1970년 전례개혁 이전까지 평미사(노래하는 등 장엄예식이 없이 거행한 미사, 대개 평일에 미사드리거나 사제 혼자, 혹은 복사만 데리고 미사 드릴 때 이렇게 했다. 전례개혁 이전까지는 가장 흔한 미사 형태이고 했다.) 후에는 미사의 마무리 기도까지 모두 마치고도 몇 가지 추가적인 기도를 더 했다.  이 기도는 원칙적으로는 미사에 속하지 않지만 빼먹질 않았으므로 사실상 미사의 진정한 마지막 예식이었다. 


성모송 세 번

성모찬송경(Salve Regina)+교회를 위한 기도 (하나의 기도인데 전반부는 성모찬송경이고 후반부는 교회를 위한 기도로 구성돼 있다.)

미카엘 대천사께 드리는 기도 


이중 마지막 기도는 교황 레오 13세(1878~1903 재위)가 환상을 본 뒤 작성한 기도로 유명하다.  레오 13세는 어느날 좌중이 있는 자리에서 기도 중에 느닷없이 환상을 보았는데, 악마가 하느님 앞에서 백 년만 시간을 준다면 교회를 유린할 수 있노라 장담했다는 내용이라고 전한다. 그래서 레오 13세는 특별히 미카엘 대천사에게 악마를 지옥으로 던져달라는 내용으로 기도문을 작성해서, 평미사를 마친 뒤 드리는 기도의 마지막에 덧붙였다.  레오 13세는 손수 이 기도를 작성했고 즐겨 바쳤다고 전해지는데, 후임 교황 비오 12세인가(기억이 가물) 이 기도의 마지막에 예수 성심께 드리는 단원을 다시 덧붙였다.  이 기도는 꼭 미사 때가 아니더라도 바치면 3년 한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조처하였다. 


하지만 이 기도문 작성은 전례학자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악마로부터 교회를 지키고 싶었던 레오 13세의 뜻과는 별개로, 미사라는 종교의례의 구조를 흐트러놓았다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미사가 마무리되면 정말로' 끝이 나야' 하는데, 원직적으로는 끝이 났는데도 다른 기도문이 덧붙여져 사실상 미사의 마무리 의식 노릇을 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보았다. 그래서 있는 기도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 판에 다른 기도를 덧붙였으니 비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기도는 1970년에 발표된 전례개혁 이전까지 평미사 후 마무리 기도로 계속 유지되었다. 


또한 이 기도문에 붙어 있던 한대사도 1967년 교황 바오로 6세의 조치로 삭제되었다. (또한 바오로 6세 교황은 3년 한대사라느니 300일 한대사라느니 하는 햇수를 없앴다. 한대사는 그냥 한대사일 뿐 다른 구분이 없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와는 별개로 복자 요한 바오로 2세는 여전히 교회를 위해서 이 기도를 가급적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매일 바쳐주기를 바랐다. 


Sancte Michael archangele, defende nos in praelio: contra nequitiam et insidias  diaboli esto praesidium. Imperet illi Deus, supplices deprecamur; tuque, Princeps militiae caelestis, satanam aliosque spiritus malignos,  qui ad perditionem animarum pervagantur in mundo, divina virtute in infernum detrude, Amen.

(Cor Iesu sacratissimum, miserere nobis) 


한국 천주교의 공식적인 번역문은 이러하다.


성 미카엘 대천사님, 싸움 중에 있는 저희를 보호하소서.  사탄의 악의와 간계에 대한 저희의 보호자가 되소서. 오! 하느님, 겸손되이 당신께 청하오니, 그를 감금하소서. 그리고 천상군대의 영도자시여 영혼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사탄과 모든 악령들을 지옥으로 쫓아버리소서.  아멘.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이 번역문에서 '오! 하느님, 겸손되이 당신께 청하오니, 그를 감금하소서.'라고 된 부분은 Imperet illi Deus, supplices deprecamur의 번역인데, 직역하면 "하느님께서 그자에게 명령하시기를 겸손되이 청하나이다" 정도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달라는 말인지 원문 자체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각국어 번역판을 보면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온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악마를 억제해 달라는 내용임은 분명하기 때문에 어떻게 번역하든 악마를 엿먹여 달리는 쪽으로 번역함은 다들 똑같다. 


나는 이 기도문을 보고 레오 13세가 환상을 보았단 말이 거짓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별로 길지도 않은 기도문이 상당히 산만하게 작성됐다.  처음에는 미카엘 대천사에게 기도하다가 중간에 하느님으로 대상이 바뀌어 한 문장, 그리고 다시 미카엘 대천사로 대상이 바뀐다. 


레오 13세 교황님은 잘 배운 지식인인데 별로 길지도 않은 기도를 작성하면서 이렇게 산만하다니, 이 기도문을 작성할 때 정말로 굉장히 심란했던 거라고 보고 있다. 

(2012/02/08 23:06 )

'전례사/교회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 금요일 예식, 반유대주의  (0) 2013.09.29
성만찬을 자주 하지 않는 이유  (2) 2013.07.26
예수님의 고통  (0) 2013.07.19
그런저런 이야기  (0) 2013.06.30
아나포라 제4 양식  (0) 2013.06.30
      전례사/교회사  |  2013. 7. 19. 21:57



에스페로스's Blog is powered by Da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