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월,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 씨가 일본 도쿄에서 지하철 철길로 떨어진 사람을 구하겠다고 뛰어들었다가 제때 빠져나오지 못하고 전철에 치여 유명을 달리했다. 그 일이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에도 크게 보도돼 사람들 마음을 뒤흔들었다. 당시 이수현 씨 홈페이지에 접속했더니 숱한 사람들이 몰려와 추도사를 남겼는데, 그중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라는 글이 상당수 있었다. 그때는 아직 민족주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무척 이상하게 여겼다.


사람이 누군가를 미워하려면 여러 가지 이유를 댈 수 있다.  심지어 미국의 어떤 백인우월주의단체는  '멕시코 놈들은 콩을 먹는다'라는 이유도 댄다고 한다. 콩을 먹는다는 것조차 미워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정확히는 싫어하니까 미워하는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댄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도우려고 할 때는 이유가 필요없다. 사람이니까, 단지 그 이유만이면 족하다. 


한국인이 일본인을 살리려다가 죽은 일이 아니었다. 사람이 사람을 살리려다 죽은 사건이다.  하느님께서 국적을 따지실 리가 없다. 태평광기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고승에게 젊은 승려가 법어를 청했다. 그러자 고승이 답하기를 "악한 일은 애써 피하고 선한 일은 힘써 행하라"라고 하였다.  젊은 승려가 실망하여 "누구나 아는 말일진데 왜 그런 말을 하십니까?"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고승이 답하여 "세 살 먹은 아이도 알지만 백 살 먹은 노인도 행하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누군가 용기를 내어 옳은 일을 하려다가 죽었는데,  여기에는 오직 '사람'이 있을 뿐이다. 

(2008-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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