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길리 공직자가 몇 년 전에 핀란드 음식이 참 맛이 없다고 깠다는데....  내 기억 속의 핀란드 음식은 별로 나쁘지 않다. 

내가 처음으로 핀란드 땅을 밟은 것은 2008년 12월 21일이다.  12월 18일에 인천 공항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가서 며칠 현지인 집에서 숙박하다가 핀란드로 갔다.  (독일에서 날 재워주셨던 분 성함이 '라인하르트'...  나중에 은영전에서 보니까 '건방진 애송이'라며 익숙한 이름이 나오더만.)  

여행일지를 날려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일자를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내가 핀란드에 도착한 날이 동짓날이기 때문이다. 그 뒤 약 3주일간 핀란드를 여행하고 1주일 정도 스위스에 있다가 돌아왔다.  그때 루프트한자 비생사가 특별 할인기간이라 비행기 삯을 줄일 수 있었다. 

처음 핀란드 반타 공항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고 투르쿠로 갔다.  투르쿠에서 날 재워줄 사람과 약속장소인 버스 대합실에서 기다리노라니 날 처음 재워주기로 한 사람과 만나 집에 들어갔다.  솔직히 그 사람 집은 남자 혼자 사는 집이라 참 거시기했는데,  가자마자 쓰러져 잤다.  일어나서 귀리죽인지 뭔지를 해주었다.  

그때 내 에스페란토 실력이 영 거시기했기 때문에 대화할 때 통밥으로 이해한 게 많다.   아마 귀리죽이 맞을 거다. 나중에 먹은 귀리죽이랑 맛이 똑같았으니까.  그때 놀랐던 게  


죽 위에 숟가락을 꽂으니까 숟가락이 섰다 (_____)  


처음 봤을 땐 진짜 어이가 없었다.  이게 죽이야 떡이야 하는 느낌.  죽이 하도 되어서 그릇 한쪽을 파 먹으면 연못처럼 파이는데 잘 메워지지도 않았다.  그럼 거기에 우유를 붓고 먹었다.  이게 핀란드인들 관습인지 날 재워준 사람의 습관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인상적이었다.  

성탄절 전날 이 사람을 따라 부모님 댁에 찾아갔다.  내가 찾아가도 되겠느냐고 핀란드인들에게 메일을 보냈을 떄 성탄절 기간 중에는 친척들이 찾아와서 안 된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사람만 날 받아들여주었다. 자기도 부모님 댁에 찾아갈 생각이니까 우리 남매(여동생도 같다)를 거기 데리고 갈 생각이었던 거다.  

투르쿠 외곽 지역에 있는 숲이 많은 시골 마을이었는데,  어머니가 마중을 나오셨다.  동네 루터파 예배당에서 같이 예배를 보고 집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같이 성탄절 음식을 먹었다.  나는 몰랐는데 핀란드 관습이 손님이 오면 일단 손님부터 먹게 한다고 했다.  부엌에서 음식을 마련해 놓고 자기가 먹을 만큼 퍼가도록 했다. 나랑 내 동생이 맨 처음 퍼갔는데 (위에 어른들 계신데 우리 남매가 제일 먼저 퍼가니까 뭔가 떨떠름했다.)   된장인지 뭔지 알 수 없는 까만 게 있었다.   설마 진짜 된장일 리는 없겠지 해서 퍼 봤더니 소고기를 잘게 갈아서 구운 거였다.  

이 된장(___)이랑 돼지 다리를 구운 게 너무 인상 깊어서 다른 음식을 뭘 먹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다른 유럽과 비슷하게 대패(?)로 다리통만 한 치즈를 대패질(?)해서 얇은 치즈조각을 빵 위에 얹고 토마토를 거기 위에 올려 먹었던 것도 기억난다.   동양에서 왔다고 아침에 중국 여행 중에 사오셨다는 중국 차를 주셨던 거도 기억나네.  


그 뒤에 여름절 휴양지로 유명하다는 쿠오피오에 갔는데, 여기서는 현지인 집에 머무르지 않고 유스호스텔에 있었다. 돈을 아끼려고 애쓰다 보니 음식을 별로 안 사먹었더니 배가 고팠다.  그런 주제 하루에 몇 시간씩 걸으니...  유스호스텔 한가운데에 있는 공용 부엌에 누군가 쪄둔 감자가 있는 걸 보고 몇 개 훔쳐(___) 먹었는데,   내가 먹어본 감자 중 가장 맛있는 감자였다. 

그 다음에는 위배스퀼래로 갔다.  여기에서 우리 남매를 재워준 분은 채식주의자였다.  파스포르타 세르보, 즉 에스페란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국제 여행용 숙박인 명부집에서도 "나 채식주의자니까 알아서 오삼"하고 적은 분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배고프지?" 하면서 채식주의자식으로 요리를 했는데 동생이 날 치면서 말했다. 

"흙 냄새가 나. 이게 진짜 사람이 먹는 음식이야!" 
(쿠오피오에서 과자를 먹고 탄산수로 위에서 불리는 식으로 버텼기 때문에 하는 말.... 나중에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고 후회했다. 돈이 충분히 남았거든.)  

유럽 채식주의자들이 다 이렇게 요리하는지 모르겠지만,  당근이랑 양파 같은 채소를 물이랑 함께 통에 넣고 열을 가해서 찜을 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이렇게만 먹으면 맛이 없으니까 바질 양념을 쳐서 먹는데, 배가 고파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꿀맛이었다.  난 원래 채식주의자가 먹는 음식이라면 맛없겠거니 생각했는데 먹어보니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우리 남내가 아주 잘 먹었기 때문에 며칠 머무르면서 점점 다양한 요리를 선보였다. 야채 피자라든가,  유유를 쓰지 않고 발효시켰다는 요구르트(?)라든가.  곡물 가루에 식초랑 블루베리를 섞은 음식도 있었는데, 이건 이 아저씨가 스스로 만들어본 거라고 했다.  맛?  꽤 괜찮았다.  채식주의자다 보니까 자기 스스로 음식을 만들었고,  그러다 보니 점점 맛있게 만드는 방법을 궁리한 거다.   아저씨가 장 볼 때 함께 따라가기도 했는데,  거기에서 파젤 초콜릿을 가리키며 이거 참 맛있다고, 자기는 스위스나 벨기에와 비교해도 부럽지 않다고 말했다.  가게에 유제품이 많았다고 기억한다.  특히 요구르트가 말이지.  

핀란드는 인구가 작다 보니 특정 분야를 특정 회사가 독점한 경우가 많았다. 우유는 '발리오'라는 회사가 사실상 독점했는데 우유가 달았다. 우유가 처음부터 달 리는 없겠고,  뭔가 처리를 했겠지.  동생은 핀란드 우유를 마셔보고는 "한국 우유도 이랬으면 난 어릴 때 우유를 싫어하지 않았을 텐데"하고 말했다.  

핀란드 중부에 있는 시골 레스티얘르비에서는 할머니가 핀란드 가정식을 제대로 해주셔서 기억이 잘 안 난다.  다양하게 잘 먹었단 기억은 확실하지만.  동생에게 할머니가 "초코 티 먹을래?" 해서 동생이 "예" (동생은 에스페란토를 못해서 영어로 이야기함)하고 대답했는데 시간이 너무 걸리더란다.  그래서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 하고 동생이 주방을 봤더니 할머니가 초콜릿 덩어리를 불에 녹이고 계셨더라나 (____)  

타는 쓰레기를 오븐 안에 넣어서 그 불로 요리를 하던 것도 기억이 난다.  

그 집에서 사우나를 했는데,  사우나 불도 장작을 태워서 했다.  할머니는 사우나를 하면 힘이 빠진다면서 미리 음식을 만들어놓고,  사우나를 하면 그걸 먹도록 했다.  그때 무슨 빵을 해주셨는데  정확히 이름이 뭐였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나랑 내 동생은 그걸 카렐리안 빵이라고 부르는데,  카렐리아 지방에서 먹는 거라나?  빵이 길죽한데 가운데에 죽(?) 같은 게 들어가 있고 주변은 울퉁불퉁했다.  영어로 카렐리안 파이라고 한다나, 아마 맞을 거다.  

버터를 녹여서 자주 쓰셨던 기억이 난다.  마요네즈 같은 건 할머니는 취급하지 않는다나.  할머니 어리셨을 때 바나나라는 걸 구경한 적이 없어서 (대학교 떄문에 헬싱키에 와서야 처음 바나나를 봤다고 한다.) 지금도 별로 바나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저녁에 우리 남매를 부르시더니 벽난로에 불을 피우고 소시지를 구워먹었는데 어이쿠, 그 맛이야 말할 게 있을까!  

할머니가 여름철에 블루베리를 따서 만들었다는 잼을 빵에 발라 먹었던 기억이 나는데 잼 맛이 좋았다.  


뭐.... 배가 고파서 더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영길리에서 음식을 먹어본 적은 없지만,  핀란드 음식이 그 악명 자자한 영국보다 더 맛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할머니께도 이야기를 들었는데,  할머니 어리셨을 때만 해도 겨울철이면 고난의 행군(?)이었다고 했다. ^^;;  겨울이 길고 농사가 잘 안 되는 지역이니 겨울이 되면  밤이 너무 길기 때문에 어른들도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고, 그래서 온가족이 주로 집에, 특히 난로 앞에(_____) 앉았다고 했다.  그때 뭘 드셨는지는 이야기하지 않으셨지만,  농사 안 되는 겨울에 먹을 건 주로 보존식이었겠지......  
      잡담  |  2013. 9. 7. 22:03



에스페로스's Blog is powered by Da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