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에 있었던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을 영화화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가 막혔다.  나는 한국 개신교계의 순교 담론 자체가 이상하고,  선교 담론은 더욱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용인에 있는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에 보면 관람객들이 지나가는 통로 거울 밑에 "나도 순교자가 될 수 있다!"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일부러 순교자가 될 이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문뜩 아래 글이 생각났다. 


"최근에 프리기아 지방에서 온 프리기아 출신의 퀸투스라는 사람이 맹수들을 보고 무서워하였습니다. 그는 자신과 다른 사람도 자발적으로 순교하도록 부추긴 사람이었습니다. 전집정관은 (황제의 수호신에게) 맹세하고 기원제물을 바치도록 온갖 회유의 말로 그를 설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우리는 스스로 (순교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을 칭찬하지 않습니다. 복음이 이와 같이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부문헌총서 12,  "폴리카르푸스의 편지와 순교록" 중 폴리카르푸스 순교록에서 번역을 인용. 원문은 서기 160년경쯤에 씐 것으로 추정됨.) 


선교를 하다 보면 순교도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순교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수가 좋은 학문활동을 함이 목적이어야지, SCI급 논문지에 실리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듯이.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은 한국 개신교 선교활동의 어둠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아니,  "어둠만" 보여준 사례라고 정정하자. 


아프가니스탄 사건 관련으로 무슨 말이 있었나 글을 찾아보았다. 


홍기영, "2007년 아프가니스탄 인질사태와 한국교회의 선교적 과제", <<선교신학>> 19 (2008년): 159-188.


글쓴이는 나사렛 대학교 선교학 교수라 하였다.  상기 글에 대한 내 평가는 이거다. 


조선중앙통신 or 대본영 발표


실패도 아주 대실패한 사례를 소재로 하면서도 털끝만큼도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어두운 부분을 철저하게 검열하여 썼다.  그래서 내가 조선중앙통신이거나 대본영 발표라고 하는 거다.  



"2007년 7월 19일은 한국교회가 잊지 못할 날이다. 분당에 소재한 샘물교회에서 파송한 단기선교단 23명이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세력에 의해 피랍된 날이다. 이날 우리 한국교회는 물론 많은 국민들이 당황하였으며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우리 국민들은 제발 무사히 모든 피랍된 선교단원들이 풀려 나오기를 간절히 기대하였다."


"특히 타문화권 선교(cross-cultural missions)는 고되고 힘들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며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만약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고도 선교적 사명을 다 감당하지 못하고 게을리 한다면, 하나님은 이 축복의 촛대를 다른 곳으로 옮기실 수도 있다(계 2:5).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서 선교적 돌파구를 마련하여 1980년대 말 이래 경험하고 있는 침체 또는 마이너스 성장을 극복하고 더욱 하나님의 선교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프가니스탄 사태는 결코 하나님의 선교를 막을 수 없으며 앞으로 어떤 유사한 사태도 세계복음화의 비전을 꺾을 수 없을 것이다."


"편협하고 독선적인 자세로 선교하는 것은 서구열강의 제국주의적 선교형태를 또 반복하는 것이다. 사실 샘물교회는 평화봉사단으로 아프가니스탄에 간 것이다. 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겠지만 그 민족의 평화와 복지와 건강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 간 것이다."


"샘물교회 담임목사는 “여러분이 볼모로 잡고 있는 그들은 여러분의 아픔을 함께 하기 위해 간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의 친구가 되기 위해 간 사람들입니다. 차라리 저를 볼모로 잡을지언정 그들을 풀어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한국교회도 그와 함께 기도해야 했다. 우리는 샘물교회를 위해 조언을 해 줄 수 있을지언정 샘물교회를 비난하지는 말아야 했다. 오히려 한 마음이 되어 그들을 위로하고 도와주어야 했다. 우리가 가야 하는 곳에 그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간 것이 아닌가?"


"샘물교회에서 파송한 선교단원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서구의 제국주의적 선교형태가 아니라 현지인들과 함께 거하며 그들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에서부터 시작하는 청취자 중심(audience-oriented)의 의료복지선교를 수행했다."


글쓴이가 철저히 검열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신교 내부에서도 이를 좋지 않게 보는 시각이 있었음이 은연 중에 드러나는 한 구절이 있다. 


"우리는 샘물교회를 위해 조언을 해 줄 수 있을지언정 샘물교회를 비난하지는 말아야 했다."



글쓴이가 말하는 '우리'란 개신교계다.  개신교 내부에서도 "이건 아니지"하는 목소리가 있었음을 전재한다.  이 글은 제목은 분석인 것처럼 썼으나 실상 분석이 아니다. 글쓴이에 따르면 샘물교회 선교단은 단 한 치의 잘못도 없었다.  아니,  실상 선교단마저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만약 이 글을 본다면,  이 사건으로 한국에서 개신교에 대한 원성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나왔음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이 글은 차라리 연설문에 가깝다. 우리에게 잘못이 없다. 어떤 고난이 있을지라도 해쳐 나가야 한다. 이런 고난은 오히려 영광이다. 


글쓴이는 3세기 교부 테르툴리아누스가 쓴 "그리스도인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라는 말을 인용했다. 그래서 나는 폴리카르푸스 순교록을 인용한 것이다. 



최우영,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를 통해 본 한국 사회의 종교 갈등: 반개신교 담론의 기원과 해석", <<사회와 이론>> 14 (2009년): 313-351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최우영 교수가 쓴 위 논문은 조선중앙통신 같은 홍교수의 글과는 달리, 대놓고 그 어둠을 파헤치려고 한다. 


"필자는 그 중에서도 2007년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 피랍 사태를 계기로 표출된 반개신교 담론이야말로 현재 우리 사회 종교갈등의 단면을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주지하다시피 당시의 반개신교 담론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집합적인 양상으로, 그것도 매우 흥분된 형태로 분출되었다. 과거 정치권력에 의해 특정 종교가 비호나 박해를 받음으로써 여기에 대한 시시비비가 논의된 적은 있었지만(강인철, 2003; 박희승, 1995),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특정종교를 둘러싸고 긴장과 갈등이 이 정도로 불거져 나왔던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표출된 반응은 개신교에 대한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성토가 주를 이루었다." 


그래.  이 글이 오히려 상황을 직시했다.  사실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 1년 전에 전초전이라 할 만한 사건이 하나 더 있었다.  2006년 3월, 인터콥 대표 최바울 목사가 8월 초에 아프가니스탄에 2천 명을 보내 평화축제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외교부도 바보가 아닌지라 한두 명도 아니고 무려 2천 명을 보내겠다는 이 대담무쌍한 계획에 대경실색했다. 심지어 한기총 내부에서도 반대 의견이 나올 정도였지만,  최바울 목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단지 1주일 예정이던 것을 3일 일정으로 줄이고,  7월 30일에 시작하려던 것을 8월 5일로 늦추었을 뿐이다.  아프간 정부도 "한국인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라고 통보했고,  이맘 500여 명이 모여 "한국인들이 선교하러 왔다" 하며 항의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만약 일정대로 진행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당시에 최바울 목사는 이 모든 소식에 대해 "사실무근이다.  한국 정부가 아프간 정부를 압박해서 있지도 않은 소식을 뿌린다" 하고 주장했다. 그리고 결국 이미 입국했던 사람들이 추방되고 나서도 역시 그렇게 주장했다. 


약간 이야기는 다른데,  2005년 통계청의 종교인구통계가 발표됐을 때에도 개신교계에서 작은 파란이 있었다. 개신교인 인구가 천만이 못될 뿐만 아니라,  그 전과 비교해서 오히려 숫자가 줄었기 때문이다. 이때 몇몇 사람들은 "통계청이 자료를 조작한 줄 알았는데, 따로 알아보니 맞는 것 같더라"라고 한 적이 있었다. 


통계청이 개신교인 인구수를 조작해서 도대체 무슨 이득이 있을까?  외교부가 (아무 문제 없는) 아프간 선교를 방해해야 할 이유는 또 무엇일까? 


최바울 목사가 이끄는 인터콥은 심지어 다른 개신교 선교단체와도 갈등이 많아서 결국 다른 단체들이 협력관계를 끊을 정도긴 했지만, 당시에 최바울 목사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도 많았음은, 그리고 아마 지금도 꽤나 있음은 확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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